오늘은 사투리 수집가의 일기장: 말의 풍경을 기록하다에 대하여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잊히는 말, 사라지는 말투 — 그래서 나는 ‘방언’을 기록하기로 했다
“그거, 마이 묵었다 아이가.”
“오매, 이거 아주 시원하니 좋구먼유~”
할머니가 웃으며 해주시던 말들,
시장에서 들려오던 정겨운 억양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들이 점점 귀에 잘 안 들리게 되었다.
표준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통하지만,
사투리는 ‘그 동네의 공기와 정서’가 묻어나는 말이다.
그 말투 안에는 사람과 지역의 역사, 감정, 생활 방식이 스며 있다.
나는 사투리를 그냥 재밌는 말이나 특이한 표현이 아니라,
“기록할 가치가 있는 문화 자산”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방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지역 방언을 듣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개인 프로젝트다.
말은 어디서 들을까? — 수집, 인터뷰, 조사 방법
사투리 수집은 은근히 탐험 취미에 가깝다.
책상이 아니라 거리, 장터, 시골 마을, 고속버스 안이 더 좋은 자료실이 된다.
🎙 방법 1: 어르신 인터뷰
가장 풍성한 방언은 보통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 듣는 법: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꺼낸다.
(고향 이야기, 옛날 일, 음식 얘기, 농사 등)
🗒 기록 팁: 스마트폰 녹음 or 바로 받아적기
💬 관찰 포인트: 억양, 어휘, 어미, 관용구
예)
“그날은 으스스허니 비가 올라고 허드만유~”
(충청도 방언: 으스스허니 = 을씨년스럽게 / 허드만유 = 하더라고요)
🛤 방법 2: 지역 방문 + 현장 관찰
시장, 버스 정류장, 시골 마을회관 근처에서
잠시만 귀 기울이면 생생한 말들이 쏟아진다.
예) 전주 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들은 말
“그 짐빤 들지 말고 고거 혀봐. 덜 무거울 텐디.”
현장에서 바로 메모를 하거나,
사진·녹음을 통해 추후 정리할 수도 있다.
📚 방법 3: 책과 드라마, SNS 참고
드라마 대사나 유튜브 브이로그에서도
다양한 방언을 포착할 수 있다.
지역 커뮤니티(예: ‘전주 사람들’, ‘경상도 유머’ 등)를 참고하면
자연스러운 표현들이 쏟아진다.
방언 일기 쓰는 법 — 기록을 놀이처럼
‘방언 일기’는 일기를 쓰듯,
하루 한두 문장씩 방언 표현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그 방언이 쓰인 상황이나 그걸 들었을 때의 느낌도 함께 기록하면
읽는 사람도, 쓰는 나도 즐겁다.
📓 예시 1: 감성 방언 일기
📍2025.05.20 / 전남 강진 / 외할머니 댁
“그 째깐한 게 어여 자라서 참말로 대견허다잉~”
외할머니가 조카를 안아주며 한마디.
‘째깐하다’는 말이 어쩐지 귀엽고 정겹게 들렸다.
요즘엔 “어릴 때부터 커서 대견하다”는 말을
이렇게 살가운 톤으로 못 듣는 것 같다.
✍️ 단어 정리
째깐하다: 아주 작다
참말로: 정말로
허다잉: 하다니까~
📓 예시 2: 테마별 방언 수첩
📍<음식 관련 방언>
“고거 참 구수허니 좋다잉~” (전라도)
“입에 짝짝 붙네예~” (경상도)
“이거 으슬으슬허니 국물 맛나유~” (충청도)
📍<감정 표현>
“우짜노, 맴찢이다 진짜.” (경상도)
“허벌나게 섭섭했쥬~” (충청도)
“아따, 속이 천불이 나불것소.” (전라도)
왜 이게 중요한가? — 사투리는 말 이상의 유산
누군가는 “사투리는 구식이고, 표준어가 깔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사투리야말로 우리말의 살아있는 변종이라 생각한다.
📌 사투리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언어의 민속자료’다.
📌 감정 표현이 더 생생하다. (ex. “속이 훅 내려앉는다” vs “깜짝 놀랐어”)
📌 말투 자체가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 잊히고 있는 지역어를 기록함으로써 보존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투리는 사람 냄새가 난다.
뻔한 말도 정겹게, 심심한 말도 유쾌하게 만든다.
다음에 고향 내려갈 일이 있다면,
할머니, 고모, 이웃 어르신에게
“요즘도 그런 말 써요?”라고 물어보세요.
반갑고 따뜻한 억양이
당신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릴지도 모릅니다.
사투리 모으기는 단순한 어휘 수집이 아닌 감정 채집입니다.
그 말투 안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정서,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말의 온도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하루 한 문장씩,
나만의 방언 일기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