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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기억을 모으는 취미: 종소리 수집과 그 울림의 기록

by 돈과 생각 2025. 6. 10.

오늘은 소리의 기억을 모으는 취미: 종소리 수집과 그 울림의 기록에 대하여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소리의 기억을 모으는 취미: 종소리 수집과 그 울림의 기록
소리의 기억을 모으는 취미: 종소리 수집과 그 울림의 기록

 

소리를 ‘수집’한다는 것의 의미

어느 날 문득, 오후 두 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교회의 종일 수도 있고, 지나가던 기차역의 신호음일 수도 있었다.
그 소리는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마치 시간의 틈새에 작게 박힌 구슬 같았다.
그때 생각했다. "이 소리들을 모아보고 싶다."

보통 수집이라고 하면 물건을 떠올린다.
우표, 피규어, 오래된 책, LP 레코드…
그런데 소리를 수집한다는 건 조금 다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한 번 귀에 담기면 오래 남는다.
특히 종소리는 그렇다.
종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다.
울리는 공간, 울리는 사람, 울리는 이유가 모두 다르다.

 

종소리를 수집하기 시작하다 — 장비, 장소, 기록 방식

🎙 장비는 의외로 간단하다
종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엄청난 음향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다.
초반에는 스마트폰의 음성녹음 앱으로도 충분하다.
단, 외부 소음을 줄이고 싶은 경우에는 보야 BY-M1 마이크나
Zoom H1n 같은 휴대용 레코더를 추천한다.
소리의 미묘한 떨림, 잔향, 주변 반응까지 담아내려면
녹음 장비의 음질이 은근히 중요하다.

📍 주요 수집 장소들

장소 특징 시간 추천

절(사찰) 깊고 여운 긴 울림, 자연 소리와 조화 새벽 예불 전후 (05:00~06:00)
교회 명료하고 단단한 톤, 하늘을 향한 음색 정오 미사 전후 (12:00)
학교 짧고 리드미컬, 기억을 자극함 점심시간, 종례 전후
기차역 기계적이지만 인간적인 소리 열차 출발 1~2분 전
시청·동사무소 공공기관의 경고음 같은 종소리 정각 알림 방송 시간대

 

🗒 기록 방식: 사운드 저널
녹음과 함께 꼭 하는 것이 ‘소리 일기’다.
날짜, 장소, 시간, 날씨, 주변 환경, 내 기분까지 함께 적는다.
이 기록이 쌓이면, 단순한 소리 녹음이 아닌 ‘시간의 지도’가 완성된다.

예시:

2025.06.03 / 오전 6:08 / 경남 하동 송림사 앞

안개가 자욱하고 새소리가 배경을 이룬다.

종소리는 3회, 길고 낮게 울린다. 울림이 길게 산 속을 감싸듯 번진다.

‘몸이 맑아지는 기분’. 이건 들을 수 있는 명상이다.

 

내가 모은 종소리 이야기들 — 울림의 풍경화

⛩ 1. 사찰의 종 — "시간이 멈추는 음"
첫 번째로 녹음한 종소리는 강원도 어느 산사에서 울린 새벽 종이었다.
절은 새벽 4시 반쯤부터 준비를 한다.
5시에 울리는 종은 49번, 망자를 위하는 의미다.
그 소리를 들으려면 추위 속에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 한다.

소리 메모:

첫 타는 땅속에서 올라오는 저음처럼 느껴졌다.
이후 천천히, 공기 속을 울리는 파동이 몸을 타고 흘렀다.
이건 소리가 아니라, 진동에 가까웠다.
말 없이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상한 마력.

이후 여러 절을 찾아다녔지만, 같은 종은 없었다.
철, 온도, 주변 산세, 종치는 스님의 힘까지
모든 것이 다른 소리를 만든다.

⛪ 2. 교회의 종 — "위로하는 금속음"
교회의 종은 보통 시간을 알리는 종이 많다.
정오나 저녁 무렵, 한적한 시골 성당의 종은
마치 드라마 속 배경음처럼 낭만적이다.

소리 메모:

충북 제천의 한 작은 교회, 오후 12시 5분.
3번 울린 종소리는 짧지만 깨끗하고 단단했다.
금속의 냉기보다는 따뜻한 위로처럼 느껴짐.
그 순간 머릿속으로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선가 엄마가 부를 것 같은 기분’.

이 종소리는 단순한 ‘시간 알림’이 아니라,
일상의 감정과 연결되는 스위치처럼 작용했다.

🏫 3. 학교의 종 — "기억을 울리는 소리"
의외로 가장 향수를 자극한 건 학교 종소리였다.
요즘은 대부분 전자종이지만, 일부 학교는
여전히 ‘벨이 아닌 종’을 사용한다.

소리 메모:

서울 구로구의 한 중학교, 3시 40분 종례 시간
짧고 일정한 간격으로 3회 울림.
명확하고 실용적인 소리인데, 왠지 마음이 두근거렸다.
‘지금이라도 가방 싸야 할 것 같은 착각.’

종소리는 시간의 구분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의 감정 구간을 열어주는 기억의 열쇠이기도 하다.

🔔 종소리를 모은다는 것: 느린 감상의 방식
이 취미는 결과보다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한 취미다.
소리를 기다리는 동안, 우린 멍하니 앉거나, 주변 풍경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속도가 아닌 리듬을 감각하게 되고,
평소에는 지나쳤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때로는 소리가 녹음되지 않기도 하고,
종이 울리지 않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의미가 있다.
그건 ‘기다림의 실패조차 기록이 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매 순간 하나의 장면이자 감정의 파편이었다.

종소리를 모은다는 건
‘시간의 조각들을 음으로 수집하는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의 공간, 날씨, 마음, 그리고 공기의 떨림까지.
지금 당신 주변에도 어쩌면 그런 소리가 있을지 모른다.
눈을 감고 들어보라.
언제나 무언가는 울리고 있고,
그 울림은 기록될 자격이 있다.